영화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반대 세력에 잡혀 죽게생겼을 때, 상대편 우드머리를 붙잡고 우리 둘이서 얘기를 해 봅시다 하고 사정하는 것을.정치적 입장 계급 다 떼고 왜 이런 상황이 되었으며 무엇을 위해 싸웠으며 어디서 둘은 총을 겨누게 되었는지.인간적으로 둘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를 이해하게되고 생각을 고쳐먹거나 적어도 인정은 하게되지 않을까 하고.지금은 그게 얼마나 순진한 착각이었는지를 잘 알고있다.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할 때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있다는 것을 뜻한다.그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고 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은 어른이 도무지 통과할 크기는 안된다.그저 담장 너머로 말은 주고 받는데 말을 한번씩 받아칠수록 담은 높아져만 간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이 있었다.중학교때인데 a군이 집에가는 버스비가 없었다.절친인 b군에게 빌려달라고 했을 때 미국서 온 지 얼마안된 b군은 과자를 사먹으려고 챙겨둔 돈이라 안되겠다고했다.나는 그때부터 그걸 미국식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생겼다.어떤 말로 b군을 비난하거나 설득할 수가 있을까?친구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보다 내가 과자를 먹는 게 더 우선한다는 생각을 바꿀 논리적 대화가 가능할까?거절한 논리는 무엇일까.과자를 사먹고도 돈이 남는 다른 친구에게 빌리라는 것일까 아니면 과자에 대한 열망이 자기보다 덜 한 친구에게 빌리라는 것일까.흔히 같은 진영에 있는 사람끼리 머리를 맞대다보면,아마도 b군은 친구와 금전거래를 하지말라는 가정교육을 받은 걸꺼야.라는 식의 우회로를 만들곤 한다.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서로 합의하고 공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착각이다.벽 건너편의 논리는 이 쪽의 논리와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당연히 소통도 안된다.백날 촛불 집회를 해봐도 일인시위를 해봐도 다른 언어일 뿐이다.이쪽 진영에서 보자면 그들은 잘못인 줄은 알지도 모르나 누구나 기회가오면 그처럼 행동할 꺼라고 믿는것이 틀림없다.아니면 범법이긴하지만 죄는 아니고 죄를 묻는다면 덫에 걸렸다고 항변하며 정치적보복이라고 할 것이다.스스로도 정말 그렇게 믿으면서.
근래에 가장 웃긴 말은 누가 엠비를 가장 엄하게 단죄할까.그런 의미에서 박근혜가 대안아닌가 하는 말이었다.그들사이에 또 예의 그 벽이 존재할런지는 모르나 그 두 지지세력이 지금 대중이 말하고 있는 단죄라는 단어를 대중의 방식대로 알아들을 꺼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