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 라는 말 속에는 여백의 미가 없다. 정의되는 순간 그저 하나의 양식과 습관과 기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숨 막힐 듯한 여백을 대하면 나는 종종 눈을 떼지 못하고 헤어나지 못해 그 공간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니 공간이 아니라 여백에(여백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한국의 것 밖에서 만나보지 못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숨만 트이고 살겠다 바둥거린 주택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놀랍게도 여백이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한국인의 디엔에이에 새겨진 것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어쩌면 둘 이상이 머리를 맞대면 그 자리에서 자연히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의 골목은 존재가 아니라 관계가 만들어 낸 곳이라는 사실이 힌트가 될지도 하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백은 목적이나 기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관계를 중시한 사상'에서 나온 결과물인 셈이다.
무엇이 채워져 있다고 여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 가만히 들여다 본다. 그것을 채울 수 있었던 까닭이 여백이고 그 여백이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둘이 맞대고 셋이 늘어선 대문들 사이 골목에는 늘 그들 만의 규칙이 있다. 힘 쎈 놈이, 돈 많은 놈이, 먼저 차지한 놈이 더 많은 걸 가져갈 지는 몰라도 그 균형을 깨지는 않는다. 그 곳에 있는 것이 여백이다.
안타깝게도 왜 없는 것이 중요한지 보이지 않는 것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 그것에 설득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시에 우리는 또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틀에 풀어놓은 한국인들은 또한 그곳에서 스스로 여백을 만들어 왔다. 만든 이들은 또 그게 못마땅해 경고문을 써 붙이고 카메라를 달고 담장을 쌓는다. 한국은 아마도 일본만화가 그리는 미래도시에, 헐리웃이 만든 모두 흰 옷을 입고 캡슐로 식사를 떼우는 영화속의 우리 미래에 가장 먼저 도달 할 지도 모른다. 그 하얀 마감을 배경으로 고전을 들먹이며 여백의 미 운운할 웃지못할 장면을 연출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