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0, 2013

변희재를 대변.

일본의 한 저널리스트는 일부러 러프한 글을 개재하고 논란의 여지를 만들고 퇴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성공했다고 자신의 비결을 공개했다. 그것이 인터넷 시대의 공개된 시장에서는 유효했다는 것이다.

남성 패션 디자이너는 게이를 연기하고 플레이보이는 순정을 가장한다. 방송가에서 유행하고 있는 진정성이란 또 어떤가. 성형을 하지 않은 사람보다 성형을 고백하는 여배우가 더 진정성이 있다고들 한다. 대학은 뭐하러가요 하는 아이유보다 석사논문 표절했어요 하는 김혜수의 쿨함이 더 박수를 받는다.

결국 훌륭한 저널이란 널리 읽히고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글인지도 모른다. 옳은 소리나 바른 문장으로가 아니어도 원하는 대로 세상이 굴러간다면 말이다. 토마스 앤더슨을 더 원으로 만드는 빗나간 예언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 변희재를 이해한다. 방송가를 조금더 빗대자면 김구라가 유명인을 디스해서 그 자리에 앉은 것처럼, 박명수가 버럭버럭 이기주의를 발산하며 인기를 얻은 것처럼.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박명수의 훈훈한 인간미와 기부소식, 김구라의 사과 퍼포먼스. 왠지 김장훈이 떠오르지 않는가? 알고 보니 그동안의 선행은 강박증과 같은 정신질환 때문이었더라 라는 식의 추락이 말이다. 어쩌면 입에 똥을 물고 내 귀에 까지 이름이 올라온 변희재라는 사람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몇 가지 훈훈한 뒷 이야기를 통해....아...길게 얘기 할 것도 없다. 맹구가 잘 차려입고 이창훈으로 아침마당에 나오는 것 같은 바로 그 느낌의 "강우석"이라는 예가 너무도 적절히 살아 숨쉬고 있지 않은가.

다 좋다. 변희재라고 그러면 안된다는 법은 없다. 그가 영향력이 높아진다고 한국 사회에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단지 변(邊)의 지향이 그의 변(述)속에 있는 것 그냥 그 자체라는 점. 몰라서 거짓말을 하고 엉덩이에 뿔이나서 못된 짓을 한다는 점. (저 치는 정말로 북한군이 늑대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는 것에 틀림없다. 지적 결여를 상상력으로 때우고 있는 부분이다. )등이 그냥 불결할 뿐이다.

사실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에게 돈을 대는 누군가가 있고, 변이 그 진영의 소위"대충 지꺼리는"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언제든 자르면 그만이고 나몰라라 하면 그만인 도구로 쓰이기만 하면 소중한 변의 인권은 어떡하느냐 말이다.

변희재의 연관검색어가 변희재 이력이어서 한참을 웃은 적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뭔데 저래?와 함께 훈훈한 무언가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 서울대 미학과 아..어쩐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알고보면 '이창훈'인 무언가. 알고보니 하버드라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참 따뜻한 한국인들이다.새삼 뭣도 없는 변이 그만...처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