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1, 2013

왕따 선진국 일본에서는 지금.


일본과의 격차 10년설이 있었다. 한국이 일본보다 뭐든지 10년 뒤쳐졌다는 말이다. 기분 나쁘게 듣는 사람도 있겠지만 앞선 것이 더 좋은 거라는 가치판단은 여기에선 무효하다. 인구 구성, 고령화, 소자화만 봐도 그렇고 도시인프라 낙후, 우울증확산, 니트족 증가 등등도 예외는 아니다. 비즈니스에서는 그 덕을 본 사람들도 많을텐데, 일본에서 유행한 것이 한국에서 자리잡는 것도 딱 그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사실 지금의 대형기획사 중심의 연예계나 아이돌 음악 등도 그렇고 실버타운, 마을 만들기 사업들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경제적 격차를 많이 따라잡았다고 하는 지금도 한국의 지표로서 의미가 있는 세계타이틀을 일본이 쥐고 있는 분야는 적지않다. 고령화는 금새 한국이 세계최고의 타이틀을 따라먹을 텐데(속도는 이미 최강이다) 그에 따른 사회 문제들은 일본이 그 본보기가 될 것이 많다. 고독사문제 실버비즈니스 확대 간병인의 수입 등등.. 한국에도 곧 들이 닥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의 선진문화가 바로 왕따문제다.십년인가 이십년 전에 왕따라는 말을 처음 듣고 응? 조금 다른데? 한 적이 있었다. 왕따라는 순 우리말(?)이 있기 전에는 일본어의 이지메라는 말이 그대로 쓰였고,돌이켜보면 언론에서 일본의 이지메를 한국에 열심히 소개하던 시기에 이미 현상으로는 한국에도 이지메가 존재했다. 이지메의 여러 수법 중에 하나인 따돌림이 한국에선 가장 큰 문제였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당시에 왕따라고 명명되어진 한국형 이지메는 지금은 역수출을 해도 될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빵셔틀 같은 건 어찌나 한국적인지 짜증이 날 정도다.

어쨌든 왕따의 대 선배이자 선진국인 일본이 매번 대책이라고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한국은 참고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해 온 실패를 답습하거나 반복할 이유가 없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은 반드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므로 일본처럼은 일단 하지 않으면 된다.

최근에도 아베정권이 특단이라며 뭘 내놓기는 했다. 들여다보니 한마디로 가해학생은 출석을 시키지 말라. 는 것이다. 응? 이거 왕따선진국 맞아? 싶은 대책이라 헛웃음마저 나온다.

왕따는 구조적인 것이고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해학생을 특정하는 것이 우선 가능한가 싶고, 가능하더라도 그 행위를 가해로 보는가 방어로 보는가를 국가가 결정하겠다니 오만에 가깝다.

뜬금없지만 성추행을 예로 들어보면 어떨까. 덩치만 큰 고딩이 버스에 탄다. 만원버스에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언니의 하체에 우연하게도 밀착한다. 별다른 저항이 없는 언니를 보며 속으로 이 언니도 기분이 좋은가보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나? 하고 제멋대로 상상을 한다. 그리고는 상호합의하에 서로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부비부비하면서. 그런데 그 학생이 만약 법정에 불려간다면 그 언니로부터 무슨 소리를 들을까. 언니는 무서웠다고 말한다. 덩치크고 시커멓고 면도도 안한 까까머리가 말이다. 얼굴이라도 찡그리면 바로 머리채라도 잡혀서 해꼬지를 당하지는 않을까하고 떨었던거다. 하지만 학생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아마도 선처를 요구하는 학생의 엄마에게 빙의되어 법의 엄중함을 탓할 런지도 모른다.

어그러진 인간관계라는 면으로보자면 왕따와 다를 게 없다.왕따 역시 카테고리로는 인간관계의 하나이고 존재확인의 수단이고 안녕하고 건네는 인삿말의 한 종류이다.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왕따는 비단 학교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고 회사에서건 교회에서건 인간집단이 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형태의 조직에서 일어난다. 그걸 국가가 해결한다는 발상이 일차원적이라는 걸 아베는 물론, 모를리는 없다. 정치가 늘 그렇듯이 가시적인 정책과 슬로건을 내세우고 싶은 거라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다.하지만 왕따문제는 그럼 어떻게 하나. 정치적인 쇼 때문에 가해자로 낙인찍혀 학교를 벗어난 학생은 누가 바로잡느냔 말이다.

한국은 불량식품도 국가가 잡겠다고 나섰으니 왕따도 곧 아베처럼(!) 잡겠다고 나설 확률이 매우 높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본이 한 것은 일단 제쳐 두는 것이 상책이다. 나라고 당장에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그러진 인간관계는 관계된 인간들이 해결하는 것이 맞다. 선생님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고 선생님들이 더 많은 감시를 받아야하고 그러기 위해 학교가 더 열려야한다. 왕따를 당하는 피해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벽이 너무도 촘촘하고 튼튼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는 그 세상이 얼마나 작고 그 울타리가 이 우주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는 교육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니 가해자를 잡겠다고 걷어부칠 팔이 있다면 피해자를 먼저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베는 못하는 그 일을.
한국은. 우리 나라는.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