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 다르다 하니까 미루어 짐작하는 것들이 결국은 말하는 사람의 그릇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한 다름은 실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내게는 '진심'이라는 이름처럼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정말로 아쉬운 이유는 따로 있다.
삼교대로 보초를 설 때의 일이다. 셋은 두시간씩 돌아가며 밤을 지키기로 했다. A는 정시 정각에 교대를 하기 위해 매뉴얼대로 10분 전에 B를 깨운다. 1분이라도 늦을 까 걱정이 많은 B는 아예 근무복을 입고 자고 있었기 때문에 정시 5분전에 교대를 한다. 두시간 후에는 C가 더 잘 수 있도록 배려하며 정시에 C를 깨운다.그 바람에 C는 정시보다 10분이 늦은 시간에 교대를 한다. C는 행여 자신의 근무시간이 길어질까봐 정시가 되기 15분전에 A를 서둘러 깨운다. A는 부당함을 주장하지만 정시에 맞추어 C와 교대를 한다...결국 이렇게 삼교대를 이어가다 그들은 다 함께 퇴근을 하는 방식이다.누가 가장 행복했을까?
C는 가장 적게 근무를 섰다는 사실에 가장 행복하다. A는 모두가 공평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B는 자신이 희생하였기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우리 사회에는 얍삽한 C가 늘 존재하기 때문에 그를 제지하기 위해 심판을 세우고 감시를 한다. B를 바보라고 부르기도 하고 손해보지 말라고 점잖게 조언을 해 주는 이도 있을 것이다. A는 세상에 무관한 듯 자기 책임을 다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삼교대로 돌아가 보자. A는 아마도 B가 조금 일찍 교대해 준 것이 고마울 것이다. 5분 더 잘 수 있음에 행복해하며 잠자리에 들겠지. B는 A의 조언에 따라 정시 정각에 교대하기 위해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B에게는 조금 일찍 교대한 그 5분 동안 더 자려고 누워 있었다하더라도 마음은 굉장히 불편했을 것이다. C가 뭉그적거리느라 늘어난 10분 보다 훨씬 더 많이. 한편, C는 B와 교대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준비시간 10분은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며 아마도 남들의 근무시간과 자신의 근무시간을 비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남들보다 10분이나 덜 근무한 것에 만족해하며 자신의 영리함을 자찬했을 것이 틀림없다. A와 B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그 순번이 되도록 꾀를 부린 것이 유효했다고 기뻐하면서 말이다.
C와 B를 A에 맞추는 것을 우리는 선진화라고 부른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이웃한 B와 C가 공유한 진입로가 있을때 서로가 암묵적으로 만들어온 규칙은 무시하고 콘크리트로 벽을 쳐 정확히 반반씩 나눠 갖는 것이 '진화'라는 것이다. C가 휠체어를 탄다거나 B가 가끔씩 잔치를 연다거나하는 따위의 것들에 그 공평하게 나누어진 공간은 더 이상 대응하지 못하겠지만 단순,명료,정확한 공평함 앞에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대체로,잘 설계된 공간이란 이러한 상황을 '0의 조건'으로 보고 '문제'로 대응하여 '해결해 놓은' 공간을 말한다.
문제가 해결되고 불만이 없는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이 장황한 글 대신 단순하게 융통성있는 행복한 사회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말하는 것에 급급하여 인간 객체의 집합으로서의 이 사회는 그 구성원 각각의 행복이 최대한 일 때에 가장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기본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서로 다른 크기의 구술을 담는 것이 병의 용적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안철수 '전'후보가 집단지성을 믿고 가겠다고 말했을 때, 마음 속으로 그를 지지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이러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었다. 개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을 우려하기에 앞서 그것들의 집합이 가지는 힘을 믿는 지도자를 갖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가 고집스럽게 말하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질리지 않았던 것은 그 이유다. 성룡이 중국인들은 공산주의통치가 필요한 민족이라는 말을 했을 때, 박근혜가 유신이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할 때에, 일본의 역사학자가 조선인들은 일본이 개화시켰다고 망언을 할 때에.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나는 묻고 싶다. 내가 선택한 사회보다 어떤 전문가가 만들어준 사회가 더 좋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에 관심을 갖는 지도자와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막아서는 지도자 중 어느 한 쪽에 표를 행사하는 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다. 다만 당신의 그 어리석은 선택 또한 지금 이 사회의 큰 기둥인 것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보고있냐 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