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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December 15, 2012

투표 합시다

투표권 1장 가치는 얼마까요? 1년 예산 350조 5년에 1800조를 4800만 국민으로 나누면 4500만원쯤 됩니다. 이 비싼 투표권 포기하면?

...문재인의 연설 중에서 인용한 글입니다만 뒤에 나오는 지지 호소 부분은 지웠습니다. 누구를 지지하던 누구에게 표를 찍던 다들 투표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새누리가 집권하면 새누리가 만드는 나라를 지지하고 민통당이 집권하면 그들이 만드는 나라에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새누리도 괜한 복지정책 사회 통합 흘리지 말고 자유지상주의 시장만능을 향해 직진하면 될 일입니다. 투표율 100%로 결과가 나온다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써봐야 어쩔 수 없이 정치색이 드러나 한쪽은 비꼬고 한쪽은 지지하는 내용이 될 것이 뻔해,짧게 줄입니다. 투표합시다.

Wednesday, December 12, 2012

백설공주

백설공주를 가두고 나라를 장악한 여왕은 호화로운 파티를 계속하기 위해서 숲의 괴물로부터 지켜주겠다 속여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한다. 백성들은 어릴 때부터 괴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또 숲은 워낙에 위험한 곳인데다 숲을 다녀온 사람은 워낙 소수여서 다짜고짜 괴물로부터 지켜주마하는 호의에 대해 괴물이 아직 살아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세금을 내고 여왕을 지지한다.
문제의 본질은 숲에 괴물이 실재하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혹은 숲에 사는 그 무언가가 괴물인지 아닌지도 아니다. 괴물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가? 그 괴물은 정말 숲에만 존재하나를 먼저 물어야 한다.
괴물을 막겠다고 온 정신이 팔려서 백성들은 더이상 춤을 추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으며 맛있는 음식도 좋은 옷도 해 입지 않는다. 어둡고 더러운 도시에 살며 아이들은 괴물을 잡겠다고 서로 칼싸움을 하며 시도 풍자도 실종된 채로 매일매일을 버티고 산다. 그러나 삶을 '버티기'시작하는 순간 괴물은 이미 숲을 나와 우리를 덮친 것이 아닌가. 전쟁이 무서워 전쟁같은 삶을 택한 것은 아닌가.괴물이 존재할 때에만 권위가 인정되는 여왕에게 과연 괴물을 잡을 마음이 있기나 할까.
괴물이 있긴 해? 라고 묻기만해도 잡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여왕이 두려워 하는 것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그 괴물이 아니다.여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힘을 잃고 백성들 처럼 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절대 못 먹게 된다는 패스트푸드처럼 자신이 지배하는 나라의 백성처럼 살까봐 벌벌떠는 여왕이라니...숲에 사는 괴물은 일곱난장이 일 수도, 원자폭탄을 가진 정신병자일 수도 있지만 백성을 지키는 자가 여왕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Tuesday, December 11, 2012

2012대선토론 2차

식당은 맛이 중요할까 친절한 서비스가 우선일까.
재벌을 잡아 그들이 부담할 재원을 민생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곳에 쓰게하면 더 좋지 않냐. 이재용이 잡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식당은 맛만 좋으면 되지!! 아마도 지하경제 활성화발언은 말실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지하경제면 어떤가.그거 때려잡는 돈으로 복지하면 되지. 의 논리로.

그런데 정말 그런가? 식당은 친절이 우선이다. 불친절하면 맛도 달아나지만 맛있게 잘 먹은 다음이래도 불쾌한 대접을 받으면 다시 가지 않게 된다.부당한 일을 제재하고 공정하게 돌리는 일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라이언일병을 구하기 위한 작전에 다수의 병력이 투입되어야하고 문화재보수에 돈을 들여야하고 재개발에는 100%에 가까운 주민동의를 받을 때까지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하고 언론은 자유롭게 비판하고 떠들고 참견해야 한다. 효율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수고가 만드는 공정함이야 말로 신바람이라고 하는 최상의 효율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성장을 위해 제껴두겠다는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을 가장 빠르고 크게 성장시킬 힘이다.

우리는 영양제를 맞겠다는 게 아니라 즐거운 식사를 하겠다는 것이니까 그렇다.

Saturday, November 24, 2012

安哲洙時代遺憾

다르다 다르다 하니까 미루어 짐작하는 것들이 결국은 말하는 사람의 그릇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한 다름은 실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내게는 '진심'이라는 이름처럼 주어가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정말로 아쉬운 이유는 따로 있다.

삼교대로 보초를 설 때의 일이다. 셋은 두시간씩 돌아가며 밤을 지키기로 했다. A는 정시 정각에 교대를 하기 위해 매뉴얼대로 10분 전에 B를 깨운다. 1분이라도 늦을 까 걱정이 많은 B는 아예 근무복을 입고 자고 있었기 때문에 정시 5분전에 교대를 한다. 두시간 후에는 C가 더 잘 수 있도록 배려하며 정시에 C를 깨운다.그 바람에 C는 정시보다 10분이 늦은 시간에 교대를 한다. C는 행여 자신의 근무시간이 길어질까봐 정시가 되기 15분전에 A를 서둘러 깨운다. A는 부당함을 주장하지만 정시에 맞추어 C와 교대를 한다...결국 이렇게 삼교대를 이어가다 그들은 다 함께 퇴근을 하는 방식이다.누가 가장 행복했을까? 

C는 가장 적게 근무를 섰다는 사실에 가장 행복하다. A는 모두가 공평했기 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B는 자신이 희생하였기때문에 가장 행복하다. 

우리 사회에는 얍삽한 C가 늘 존재하기 때문에 그를 제지하기 위해 심판을 세우고 감시를 한다. B를 바보라고 부르기도 하고 손해보지 말라고 점잖게 조언을 해 주는 이도 있을 것이다. A는 세상에 무관한 듯 자기 책임을 다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삼교대로 돌아가 보자. A는 아마도 B가 조금 일찍 교대해 준 것이 고마울 것이다. 5분 더 잘 수 있음에 행복해하며 잠자리에 들겠지. B는 A의 조언에 따라 정시 정각에 교대하기 위해 노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B에게는 조금 일찍 교대한 그 5분 동안 더 자려고 누워 있었다하더라도 마음은 굉장히 불편했을 것이다. C가 뭉그적거리느라 늘어난 10분 보다 훨씬 더 많이. 한편, C는 B와 교대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준비시간 10분은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며 아마도 남들의 근무시간과 자신의 근무시간을 비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남들보다 10분이나 덜 근무한 것에 만족해하며 자신의 영리함을 자찬했을 것이 틀림없다. A와 B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고 그 순번이 되도록 꾀를 부린 것이 유효했다고 기뻐하면서 말이다.

C와 B를 A에 맞추는 것을 우리는 선진화라고 부른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이웃한 B와 C가 공유한 진입로가 있을때 서로가 암묵적으로 만들어온 규칙은 무시하고 콘크리트로 벽을 쳐 정확히 반반씩 나눠 갖는 것이 '진화'라는 것이다. C가 휠체어를 탄다거나 B가 가끔씩 잔치를 연다거나하는 따위의 것들에 그 공평하게 나누어진 공간은 더 이상 대응하지 못하겠지만 단순,명료,정확한 공평함 앞에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대체로,잘 설계된 공간이란 이러한 상황을 '0의 조건'으로 보고 '문제'로 대응하여 '해결해 놓은' 공간을 말한다.

문제가 해결되고 불만이 없는 사회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이 장황한 글 대신 단순하게 융통성있는 행복한 사회라는 말로 대신 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말하는 것에 급급하여 인간 객체의 집합으로서의 이 사회는 그 구성원 각각의 행복이 최대한 일 때에 가장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기본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서로 다른 크기의 구술을 담는 것이 병의 용적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안철수 '전'후보가 집단지성을 믿고 가겠다고 말했을 때, 마음 속으로 그를 지지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이러한 생각과 연결되어 있었다. 개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어리석고 이기적인 것을 우려하기에 앞서 그것들의 집합이 가지는 힘을 믿는 지도자를 갖게 될 것을 기대했다. 그가 고집스럽게 말하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질리지 않았던 것은 그 이유다. 성룡이 중국인들은 공산주의통치가 필요한 민족이라는 말을 했을 때, 박근혜가 유신이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할 때에, 일본의 역사학자가 조선인들은 일본이 개화시켰다고 망언을 할 때에.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나는 묻고 싶다. 내가 선택한 사회보다 어떤 전문가가 만들어준 사회가 더 좋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에 관심을 갖는 지도자와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막아서는 지도자 중 어느 한 쪽에 표를 행사하는 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다. 다만 당신의 그 어리석은 선택 또한 지금 이 사회의 큰 기둥인 것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나는 바랄 뿐이다.


보고있냐 민주당?